알랭 드 보통 - <불안> 원인 챕터3 기대

파쿠파쿠 2023. 5. 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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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과학기술 발명품이 일상생활을 바꾸었으며, 이에 따라 정신적 지평에도 변화가 왔다.

평등 기대 선망

근대에 들어 많은 것이 변했다.
사람들은 평등을 알게 됐고, 기대하게 됐으며, 선망하는 것이 생겼났다.
희망찬가?
이는 부작용이 따랐다.
평등은 조그만 차이도 크게 보이게 했고, 사람들은 실망하는 데에 면역이 없었으며, 선망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 때 좌절을 견딜 방도를 알지 못했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이 구절을 보고, '챕터3 기대'에 한해서는 '울화'라는 책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울화... 그래 울화.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불안보다는 울화인 듯하다.
동등했다 여긴 자들이 나를 '앞서'나가는 것을 볼 때의 마음이란... 불안을 넘어선 울화가 맞다.
 
동등했으면 더 열심히 하지 그랬니? 라고 하기엔 내가 배운 것은 앞을 보고 달리는 것 뿐이었다.
달리는 요령을 남들보다 몰랐다거나, 하다 못해 신발이 좀 후졌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러다 넘어지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넘어져서, 쓰린 무릎에 묻은 모래를 호호 불다가, 쓰라린 무릎을 붙잡고 일어났을 때 뒤를 돌아보는 이는 없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라는 게 맞다. 허탈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린 무릎으로 절뚝이며 달리는 것이다. 쓰린 무릎이 흉터로 되기까지를 기다리며.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닌 것도 안다. 다들 같기 때문이다. 앞을 보고 달리는 것만 배웠으므로.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데 사로잡히는 것이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기에 나를 혐오한다.
까진 무릎이 흉터로 될 즈음 어렴풋이 느낀 게 있는데 이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멈추는 건 의지박약. 결국 혐오가 끝나지 않는 굴레다.
어떻게 하면 끊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 밖으로 꺼내면 그런 생각하지 말라, 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아온다.(응원 고맙다)
아닌 것 같다니깐.... 말이 돌고 돈다. 이 또한 굴레다.
 
한때 동기부여가 사람을 목표를 이룩하는 키(key)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동기부여... 왜 부여돼야 하고 그 목표는 어디서 나온 거지? 라는 고민으로 변화되기 까지는 길다면 긴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동기부여와 선망을 만드는 미디어들을 보면 어느새 속이 울렁리기 시작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콘텐츠라 개인 취향입니다. 라고 최소한의 방어 깔아놓습니다.)
하지만 방도를 모르겠다. 알아도 모른척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챕터3 기대 너무 어렵네요. 유난히 공감되면서, 가슴아프면서 또... 인용도, 단어도 어렵습니다!
내 느낀점을 모두 얘기하기엔 너무 사적이고, 사적인 것을 담지 않으면 내 느낀점을 다 얘기할 수 없으니... 이해되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네요.
전근대의 체념과 고통의 세계 >>> 근대의 기대의 세계로 들어서며 생긴 우리네들의 불안을 얘기하는 챕터라고 정리하겠습니다.
"기대라는 탈을 쓰고 찾아 온 불안"
 
 
 
파쿠의 책 감상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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