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쿠's INSPIRATION

[영화리뷰] 기생충

파쿠파쿠 2019. 12. 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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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가장 강렬하게 남은 두 가지.

1. 물은 아래로 흐른다.
2. 계획은 없느니만 못하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은 넘치는 가난을 비유한다. 그 물은 깨끗하지 않아서 오줌, 똥물, 변기에 역류한 오물이다. 아래 동네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는 물살에 휩쓸릴 뿐이다.

나는 궁금했다. 기생충 가족이 위험한 물 속으로 뛰어 들어 반지하 방으로 되돌아 가는지. 지긋지긋하게 냄새를 풍기는 반지하 방이 아닌가?

그러나 반지하 방엔 저마다의 보물이 있었다. 보물은 아무리 더럽고 거센 물살이라도 이겨내게 했다. 각자의 보물을 손에 넣은 가족은 반지하 밖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근심 걱정을 잊는다. 반지하이든 높은 저택이든, 햇살 아래이든 축축한 물 속이든, 보물은 모든 것과 무관하게 존재 가치를 뽐낸다. 보물은 생명의 가치이다. 그것은 외부의 어떠한 조건에 처해 있든, 세상에 태어나며 가지게 되는 것이며 절대 빛을 잃지 않는다.

기택은 충숙의 상패를 챙겼다. 가족들의 보물 중 유일하게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무능력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기정이 숨겨 놓은 담배는 물에 젖지 않았다. 기정은 물이 차오르는 집의 가장 위 쪽에 자리잡고 담배를 태웠다. 그리고 변기에서 분출하는 오물이 무섭지 않은듯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의기양양하게 앉는다.

기정은 가족의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는 인물이다.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 기정은 높고 볕이 드는 저택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묘사된다. 돈이 없어 입시 학원에 못 간다. 뛰어난 실력으로 위조 문서나 만든다. 그러나 능청스럽게 담배 한 모금을 마시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즐긴다. 능력있고, 사리분별에 능하고, 담배 한 개비의 낭만까지 지닌 기정이다. 기정의 계획은 거의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칼에 맞아 죽는다. 가족 중 유일하게 죽는다. 계획이 성공으로 돌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이 느껴진다.

기우는 집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으로 민혁이 남기고 간 수석을 택했다. 돌이 떠올랐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과연 돌이 떠올랐을까? 나는 기우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돌은 당연히 가라앉는다. 그러나 기우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서 조차 돌을 껴안았다.

기우는 가족 중 상위계층에 대한 환상이 가장 강하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저택에 어울리는 사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따지고 든다. 다혜에게 자신이 이 집에 어울리는지 묻는 기우의 표정은 초조하다. 그러나 질문을 들은 다혜는 당연하다는 듯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혜의 순진무구한 표정과 대답은 다혜가 부자이기 때문에 구김없이 착해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기우가 그 집에 어울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일까?

돌은 기우의 계획이다. 무계획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기우는 계획을 세워 살아간다. 그것이 기우 삶의 동기부여이고 보물이다. 기우는 앞으로도 하루하루 꿈을 꾸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기우가 꿈꾸며 사는 삶은 허무맹랑 할 것으로 보인다. 기우는 환상에 사로 잡혀 현실을 보지 못 한다. 넘쳐흐르는 물 속에서 돌을 끌어안고야 마는 인물이다. 차오르는 물 속에서 돌은 가라앉을 일 밖에 없다.

기택은 왜 충숙의 상패를 끌어안았을까? 물속에 잠기는 집기가 아쉬웠다면 조금 더 쓸모있는 것을 건져내면 될텐데. 그러나 이렇듯 쓸모없어 보이는 상패조차 기우가 택한 돌보다는 나아보인다. 아버지는 상패를 챙겨 물이 차오르는 집안을 걸어나간다. 사는대로 살아가는 아버지. 그래서 집안 식구들에게 구박 받지만 그의 삶에는 실패가 있어본 적이 없다. 계획은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무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반문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무계획보단 계획이 낫지 않느냐고. 우리는 무계획보다 낫다는 이유로 계획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의 계획이 나름 그럴듯하기 때문에 계획하고 사는걸까? 그럴듯한지 아닌지에 대한 답은 길고 짧은 걸 대어 봐야, 한 사람의 삶이 다 살아지고 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그때까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계획은 잘 풀리다가 틀어지기도 하며, 도중에 칼에 맞아 스러질지 모르며, 쏟아지는 물살에 떠밀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벽에 부딪혀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나를 잃지 않게 하는 보물을 지켜야 한다. 나는 살아가며 어떤 것을 가장 소중하게 지켜내면 좋을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본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보물은 기우가 꿈꿨던 '의미있는 돌' 혹은 '어찌됐든 돈' 보다는 더 나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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